인지과학의 핵심 응용 분야인 HCI의 근본 철학을 통해 사물 인터넷 전략, 실제 개발과 프로젝트화를 위한 접근 방법을 생각해 보자.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이란 인간과 컴퓨터의 효율적 인터액션을 다룬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사용성(Usability), UX(User Experience), 접근성(Accessibility)란 말은 이제 IT업계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다.

애플은 Xerox가 처음 개발한 아이콘 등으로 이루어진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대중적으로 퍼뜨렸고 이후 아이폰에 이르기 까지 HCI의 혁신을 이끌었다.

애플은 편리한 UI를 가진 소프트웨어-하드웨어-콘텐츠-소비자-비지니스의 결합에 이르는 확장된 HCI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HCI란 단순한 사용성 이상의 문화적 가치 체계라 할 수 있다.

사용성이란 빠르고 편리해서만은 의미가 없다. 영화 「ALIEN」(1979)에선 진정한 합목적적인 유저 인터페이스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고니 웨버는 에일리언에 점령당한 우주 화물선 노스트로모호를 자폭시키고자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자폭 장치를 가동시키며 고군분투한다.

수많은 보안 단계와 관료적 행위가 절차적으로 구현된 자폭장치 인터페이스의 목적은 분명하다. 함부로 자폭시키지 말라는 것. 이런 시스템에서 사용성은 부차적이거나 제한해야 하는 요소다.

현대적인 IT 시스템은 수많은 추상적인 비지니스 행위가 축약된 것이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개발방법론이 존재해 왔다.

그 중 하나는 프란시스코 바렐라, 에반 톰슨, 엘리노어 로쉬가 「Embodied Mind」(1992) (국내에는 ‘몸의 인지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에서 제시한 발제적(Enaction)방법이다. 발제적 방법이란 단순히 개발 방법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과학 방법론, 삶의 방법론을 가리킨다. 책은 로봇 공학자 로드니 브룩스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으며 번역본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해 본다.

‘우리는 극단적인 가정(H)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결론(C)에 도달했다. C: 매우 단순한 단계의 지능을 검토할 때, 우리는 분명한 표상과 세계의 모델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세계를 그 자신의 모델로 쓰는 편이 낫다는 결과가 나온다. H: 표상은 지적 체계 구성의 대부분의 작업에서 잘못된 추상의 단위다.’

-로드니 브룩스

이후 로드니 브룩스는 발제적 방법으로 로봇을 만들었고 그의 로봇은 산업 장면에 편리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발제적 입장은 HCI 입장에선 과격하게 받아들여 진 것이 사실이다. 가령 아이콘은 그것이 이미 실제에 관한 추상화된 표상이다.

문자가 표상된 키보드를 누르고 아이콘을 클릭하고 메뉴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행위들은 기실 구차스런 일이며 결국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든 걸 해 줄 사물 인터넷은 발제적 입장을 향해 진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젠가는 메뉴와 아이콘으로부터 해방되고 HCI도 발제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편화하여 진화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삼성은 갤럭시S6 메뉴에서 아이콘을 없애 버렸다

발제적 방법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발제적 방법을 이루기 위해선 수 많은 비발제적 방법을 통한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마치 우리가 막장이라 부르는 개발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인 삽질로부터 광물을 캐 낸 것처럼. 아무튼 인간에게 필요한 행위를 정의하여 로봇의 움직임을 정의하는 발제적인 개발 방법은 현대적인 개발 방법론에서 비지니스 행위를 추상화하여 데이터의 엔티티를 정의하는 절차와 매우 닮아 있다.

간단히 쓸모 있는 경험이 결여된 섣부른 추상화는 쓸모없는 표상들을 만들어 낸다. 사물 인터넷 시대에서 그러므로 필요한 일은 이전의 범용적인 컴퓨터 화면과는 달리 더 세밀한 인간 경험의 구조를 분석해 내는 일이다. 기존 HCI의 원칙은 인간의 단기기억은 5~7개의 한계가 있으므로 웹사이트의 메뉴도 그에 따라 단순화해야 한다는 등 표면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을 더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해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상대를 타자화 시킨 조건화 때문이다.

분석의 필요란 이해가 목적이 아닌 이해가 환상임을 밝히는 상황을 납득해야 함을 서로 공유하는 행위로서 의미가 있다. 분석이 종국에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수렴해야 하는 이유다. 분석은 서로를 외롭게 하지만 그것으로 감동을 위한 최소한의 바탕이 마련되어진다.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 하면서 -어둠 속에서- 서로 가까와 지기 위해 손을 내밀게 된다. 엄밀히 말해 각자의 내부에게 손을 뻗는다.

손을 내민다는 표면의 인터액션과는 상관없이 하부에서 감동이 일어난다. 감동이 원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떠받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감동은 산업시대의 욕망에 의한 재미와 여흥이 아닌 인간성 내부의 본질적인 감동이다.

새로운 시대의 UX 설계는 이런 확고한 정향성을 설계자가 의지적으로 인식해야 가능하다. 나아가 우리는 유익한 경험을 사회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의미 있는 인간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발현되는 통로와 채널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의 사물 인터넷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먼저 현재 이 동네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의미에서 로컬리티를 획득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인터넷은 아직 댓글이 모든 것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다. 발제적 방법이니 사물 인터넷이니 하기 전에 우리의 공동체적인 가치를 되살리고 책임과 인간적인 긍휼함을 회복하기 위해, 댓글에 나이를 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Juno
Author

한국표준협회 경쟁력향상센터 수석전문위원 nahojun@sod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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