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 K는 침대 위에서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어젯밤 프로젝트의 중간보고를 마치고 팀원들과 마신 소주로 입안이 떨떠름했다.

7시 5분. 아직 늑장을 부릴 시간이 있다. 누운채로 손가락을 움직여 포털 뉴스기사를 훑어 보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기사를 넘겨 보던 K는 영화 기사를 무심코 눌렀다.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영화였다.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K는 대학시절 교양시간에 배운 사이버네틱스란 단어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꿀까?란 질문,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친절하게 분석해 준 「블레이드 러너」(1982)를 생각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쫒는 형사 데커드의 버버리 코트를 떠올렸다. 창 밖을 보니 비가 내렸다.

지하철 안. 버버리 코트의 옷깃을 올린 K는 로봇 관련 유투브 동영상을 찾아봤다. 안드로이드 혹은 로봇 기술은 수년 새 눈이 번쩍 뜨이게 발전하고 있었다. 영상 속의 로봇들은 걷고, 뛰고,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어폰을 통해 K의 음성앱이 오전 회의 시간을 알려 줬다. K는 음성인식 앱이 때로 애인처럼 느껴졌다. 마치 영화 「Her」(2013)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만 열연한 인공지능 운영체제처럼.

제4차산업혁명시대의 인간형 로봇 기술에는 다양한 제어기술과 이른바 현재의 IT, 나아가 ICT기술이 필요하다. ICT기술은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로 대변 되며 그것을 구현하는 데는 진보된 알고리즘들이 필요하며 나아가 컴퓨팅의 하드웨어적인 진화 까지도 필요하다.

K는 인간과 기계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가지는 감성적 이해의 실체는 무엇인지 생각했다. 스마트폰의 음성인식앱이 로봇에 설치되기만 한다면 영화에 나오는 안드로이드 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로봇이나 안드로이드의 영상을 찾을 순 없었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K는 바쁘게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K가 의문을 가진 것에 대한 현재의 해답은 시청각과 팔다리 움직임 등의 모사 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것을 인간 처럼 상위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ICT의 그 C가 대체 뭐랍니까? 원래는,인지과학의 C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및 과학기술정책에서 C는 Communication을 일컫는다고 여겨진다. 이는 단순히 기기간의 통신이 아닌 보다 인간적인 측면인 심리학, 인지과학, 사회공학적 개념들을 포함한다고 보인다.

사상과 철학으로써의 인지과학이 없는 대한민국

IBM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가치(Value)를 담아내는 서비스를 Cognitive Computing이라 이름 붙였다

미국의 경우 IT-BT-CT-NT의 4T를 미래융합과학 기술의 초석으로 삼은 보고서가 발간 됐으며 다른 나라들도 과학정책에 인지과학을 전면에 내 세운데 비해 현재 ICT를 논하는 한국은 ICT라는 명칭에 인지과학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아 인지과학 전공자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두루뭉술한 인문학 혹은 인문적 경향을 나타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 IT강국이라고 자부하던 한국은 왜 요즘들어 IT왜소국이 되어가는 것일까? 70년대 발빠르게 적용된 과학정책, 그 이후 인터넷의 가장 빠른 대중적 보급을 거치며 한국은 IT기술을 잠시 꽃 피웠다. 하지만 정작 IT혁명을 가능하게 한 서구사회의 철학적-사상적 검토는 우리 안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시스템, 국방, 금융, 언론, 방송, 문화, 일상의 하부를 지탱하는 현재의 IT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현대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핏줄과 같다. 그것이 대리석이든 콘크리트든 와이파이든 문명의 근간은 그에 걸 맞는 사상적 근간 위에 지탱되어야 한다.

반면, 창업 당시 부터 뚜렸한 사상에 기반한 애플

우드스탁 세대의 Keyword:비틀즈, 롤링스톤즈, 反戰

“우리 세대는 … (월남전,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우리 부모 세대가 만든 세상을 그대로 믿기 어려웠습니다. 일상의 이면에 무엇인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애플은 1960년대의 히피-뉴에이지 사상의 일관된 흐름을 이용했죠” 

스티브 잡스 인터뷰 중

비틀즈는 White Album, Yellow Submarine, Abbey Road를 발표했고, 롤링스톤즈는 Honky Tonk Women을 히트시켰으며, 머리칼을 마구 기른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었다. 파리의 드골은 정권에서 물러났고,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1969년은 그런 해였다.

뮤라카미 류

스티브 잡스는 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업이 60년대의 히피-뉴에지이 사상의 일관된 흐름에 놓인 것이라고 했을까? 그는 단지 아이디와 영업력이 뛰어난 장사꾼인데 성공의 결과로 언어의 성찬을 즐긴 것일까?

이제 IT시대의 현상을 즐기거나 기술하기만 하는 서술로서가 아닌 IT의 근간을 이루는 중핵적 사상을 살펴보도도록 하자.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이란 이름을 띄건 아니건 상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IT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마음의 물리적 구성물이며 결국 마음과 그것을 체계화 시킨 사상이 모든 것을 구성 시킨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 전후세대의 이상을 반영하는 인물이며 ‘정신문화와 기술의 조화를 통한 인류문명의 개화를 목표로 했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스티브 잡스는 물론 20세기 초반의 과학혁명의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사이버네틱스, 컴퓨터 과학의 역사, 인지과학, Information Technology, ICT 혁명의 시대로 진행한 문명사의 발전 방향이 논의될 것이다.

참고로 K가 본 블레이드 러너의 버전은 해리슨포드가 여자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다소 암울한 버전의 감독판 DVD가 나왔지만 K는 원래 버전을 더 좋아했다. 새벽 세시. 술에 취한 것도 아닌 택시안의 K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복잡한 시스템들과 그보다 더 지난한 정치의 숲을 헤치며 대한민국 SI사업의 까마득한 을의 하나로 소모되어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의 꿈에 나오는 일각수

하지만 아직 디스토피아를 받아들이며 절망하기는 이르다. 그의 휴대폰에서 일각수의 울음 처럼 혹은 팅커벨의 반짝이는 마술봉처럼 음성앱의 알림이 불을 밝혔다.


이 글은 과학기술정보협의회 (http://www.astinet.kr/)에  ‘인지과학으로 만나는 IT-인문학 ‘이란 전문위원 칼럼으로 개제 되었습니다.

Juno
Author

한국표준협회 경쟁력향상센터 수석전문위원 nahojun@sod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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