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ICT의 근본 철학이라 할 것들은, 1950년대 인지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킨 컴퓨터과학으로부터의 뿌리 깊은 사상적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과학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인지과학과 인지철학적 입장에서, 인간과 S/W와 H/W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현재 우리가 다루는 컴퓨터란 무엇인가를, 또한 그것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나를 살펴봄으로써, ICT시대의 철학을 명상해 보자.


우리가 처음으로 들여다 봐야 할 것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 데이터 입력-출력의 인지시스템을 모사한 현대의 컴퓨터다. 영화 「The Imitation Game」 (2014)은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틀을 제시한 앨런 튜링(1912~1954)의 삶을 다룬다. 베네딕크 컴퍼비치가 열연한 앨런 튜링은 2차 대전시 독일의 암호 시스템을 해독하기 위해 현대 컴퓨터의 전신을 개발했고, 사고실험인 튜링머신을 통해 범용문제계산은 이진수로 환원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Marvin Minsky
Marvin Minsky(1927~2016)

알려진 소문에 따르면 튜링은 주역의 이진수 체계(음과 양)을 바탕으로 튜링머신을 고안했다. 그렇다면 튜링 머신은 특별한 문제, 가령 생각하면 어렵지만 답을 알고 나면 자명한 인간적 문제(P대 NP)를 해결할 수 있을까? 튜링 머신과 궤를 같이 하는 튜링 테스트는 계산 가능성에 관한 목적 외에 이후 기나긴 철학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즉 앨런 튜링의 사후라 할 수 있는 1950년대에는,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를 비롯한 인공지능학자들의 주도에 의해, 인지과학혁명이라는 거대한 지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 흐름의 중심적 논란중 하나는, 지금까지도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바로 의식의 문제다. 이는 정신적 과정이 컴퓨터로, 의식이 뇌로, 마음이 물질로 환원될 수 있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그리스 철학으로까지 소급되는 서양철학의 중심 문제다. 즉 심신문제, 심신이원론이라고 부르는 문제다.

튜링 테스트에 대항한 존 설(Jhon Searl)의 ‘중국어방 논변’을  살펴보자. 위키백과 따른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선 방 안에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을 집어 넣는다. 그 방에 그 사람 외에 필담을 할 수 있는 도구와 미리 만들어 놓은 중국어 질문 목록과 중국어로 된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 목록을 준비해 둔다. 이 방 안으로 중국인 심사관이 중국어로 질문을 써서 안으로 집어 넣으면 방 안의 사람은 그것을 준비된 대응표에 따라 그에 대한 답변을 중국어로 써서 밖의 심사관에게 준다.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모르는 중국인이 보면 안에 있는 사람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에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중국어 질문을 이해하지 않고 주어진 표에 따라 대답할 뿐이다. 이로부터 중국어로 질문과 답변을 완벽히 한다고 해도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진짜로 이해하는지 어떤지 판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능이 있어서 질문 답변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가 있어도 그것이 지능을 가졌는지는 튜링 테스트로는 판정할 수 없다는 주장’

다시 말해, 중국어방의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중국어 질문과 답변에 대해 이해가 아닌 모양새의 비교 대조를 통한 인지를 하고 있으며 이는 컴퓨터로부터의 반응을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생각(사고, thinking)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튜링 테스트를 전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John Searl

위 논변이 나타내는 것은 강인공주의자(John Searl 본인)의 주장은 결국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계산 가능하지 않은 ‘의식’을 인정하는 것이된다. 다시 말해 이는 곧 의식(인간 마음)이 환원 가능하거나 계산 가능한 것과  상관없이 별도로 존재하며 그 과학적 탐구 방법도 별도로 존재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별도의 방법을 산업적 측면에서 유용하게 다루는 게 이 글의 목적 중 하나다.

중국어방은 의식논란에서 가장 유명한 지위를 최근까지도 차지하고 있다. 이 사고 실험은 리들리 스콧이 던지는 것과 같은 떡밥이다. 최근 존설의 강연을 찾아보면 의식의 중요성을 내세우기 위해 중국어 방 실험을 내세운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확실히 존설은 의식이 있다거나 없다거나에 대해 중요하게 발언을 하지 않는다. 존 썰은 최근에는 유물론 혹은 기계론에 가까운 해석을 가미한, 진화생물학적 연구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진화생물이 의식에 대해 연구를 하냐 마냐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존설은 거의 유물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렇다면 튜링은 의식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 튜링 역시 의식에 대해서는 중요하다거나, 안중요하다거나 언급했던 것은 아니며, 단지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인간이 그것을 사람과 구분을 못할 것이다란 철학적 명제를 던졌을 뿐이다. 최근의 인지과학 철학자인 대니얼 데넷의 주장도 이들과 유사하다. 대니얼 데넷은 퀄리아나, 의식 따위는, 사람들이 가진 착각이거나 일종의 마술이라고 생각한다.

튜링과 함께 현대 컴퓨터의 순차적 아키텍처를 개발한 폰 노이만(1903~1957)의 시스템은 지금도 전 지구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잘 쓰이고 있다. 한편, 폰 노이만은 아인슈타인과 본이 주축이 된 양자물리학 논란의 중심에서 하이델벨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2014 미래기술백서는 폰노이만 시스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존의 디지털 컴퓨팅 시스템은 정보 데이터의 단위인 한 비트(bit) 당 ’0’과 ’1’ 두 가지 경우를 가지며 입력, 출력, 정보처리 유닛(이는 다시 제어부와 연산부로 구성됨)과 정보 저장, 기억 즉 메모리 유닛으로 구성되는 폰 노이만(Von Neuman) 구조를 가진다. … 그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야기한다.’

모든 컴퓨터는 예외 없이 기본적으로 폰노이만의 구조를 사용한다.기존 컴퓨터의 한계는 열(熱)과 에너지 소비다. 현재 클라우딩 컴퓨터의 전력 소모는 일본 전체의 소모량과 맞먹는다.

IBM, Intel, Google을 비롯한 글로벌 IT기업들은 조만간 사물 인터넷(IOT)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생성될 빅데이터의 처리를 위한 새로운 컴퓨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유저인터페이스는 새로운 하드웨어가 필요함을 역설하며 아이폰을 내 놓았다. 비슷하게 전혀 새로운 소프트웨어는 새로운 물리적 구현의 결과로써의 하드웨어를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인류는 고차원의 추상화가 필요한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아키텍처를 가진 컴퓨팅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의 하나가 양자 컴퓨터다. 양자 컴퓨터는 역시 미래기술백서에 의하면

‘중첩 및 양자-얽힘 현상으로 인해 한 개의 큐빗 상태가 변할 때마다 다른 큐빗들의 상태도 함께 변하는 특성을 가지며 큐빗 수를 늘림에 따라 정보 처리 속도를 지수함수적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

폰 노이만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인슈타인과 본이 주축이 된 양자물리학 논란의 중심에서 하이델벨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양자 컴퓨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노기술이 빠르게 발전하지 못해서 이기도 하지만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발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자영학의 동시성과 얽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미래에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 될 건 확실하다. 그 때엔 기존의 소프트웨어 공학, 개발방법론 등 우리가 알 던 모든 게 변화할지 모른다. 개발자들이 양자역학을 이해해야 하는 시점이라니. 하지만 아직 겁먹기에는 이르다. 한 발 더 나아가 신경망 컴퓨터를 살펴보자.

‘신경망 컴퓨터는 나노공정을 통해 1,015개에 이르는 뇌의 연결부 숫자를 재현한다면 뇌의 병렬 처리 기능과 학습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로써 뇌의 복잡한 기억 및 연산 기능을 아주 작은 에너지만을 소비하면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진정, 컴퓨터가 인간과 같은 가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사이버네틱스-사이버펑크 시대의 유산을 계승한 공상과학영화들을 떠 올려 보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1995)의 ‘소령’과 영화 「A.I」(2001)의 ‘어린아이 로봇’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실체에 대해 철학적이고 감성적으로 질문한다.  공각기동대는 블레이드러너로부터 인간과 기계가 같을 수 있냐는 질문 이외에, 중요한 것을 빌려왔다.  블레이드러너가 걸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설정은 바로 미래 도시에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비다. 비는 인간으로 하여금 물-혹은 바다라는 인류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비오는 날의 인간들은 기억-노스텔지어를 되살린다.

공각기동대의 일본의 고대어로 흐르는, 주제곡 위에 펼쳐지는, 홍콩 거리를 모티브로 한 도시의 몽타주 장면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다. 뛰어가는 어린이들의 노란 우산, 빗물이 흘러내리는 사실적인 표현, 오래된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습기 찬 벽, 휘황한 네온사인과 빗방울이 만들어 내는 수만 가지의 광휘, 이 것들이 관객의 오감을 총동원시키고, 특이한 노스텔지어와 예술적 감흥으로써의 퀄리아를 경험하게 한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시적 감흥과 같은 주관적 경험의 특이함을 갖거나, 그것을 알아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그런데 이들 영화들의 질문들의 목적은 ‘인간은 환원 가능한 컴퓨터일까요?’가 아닌 각각 관료사회와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경고다.

인간이란 결국 대상 없는 절대적 실체

다시 설의 중국어 방 논변을 생각해 보자. 중국어 방 논변은 설이 유심론자이든 아니든 환원되지 않는 실체로서의 의식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즉 그것이 양자 컴퓨터든 신경망 컴퓨터든 컴퓨터는 고도로 추상화된 인간 마음을 메타화하여 모사할 뿐 인간과 같이 대상 없는 절대적 실체가 될 수 없음을 증명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개발자들이여 일단은 인간성 측면에서 그대들은 절망하지 말라. 게다가 현재 폰노이만 컴퓨터에서 가동되는 빅데이터를 캐내는 데 쓰여야 할 각종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의 휴리스틱인 창발, 진화, 유전의 알고리즘과 같은 걸 만들어내야 하는 것 만으로도 그대 개발자들의 밤은 아직 길다.

절망하지 말라, 혹시 아는가? 미래엔 인간의 지능을 모사한 신경망 컴퓨터가 자연어에 가까운 말을 이해하고 소프트웨어를 코딩할지. 그 안드로이드들이 양자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코딩한다면 그대들은 수고를 덜고 휴가를  계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취향에 따라 옆자리에 미남 혹은 미녀 안드로이드를 태우고 말이다.

4차산업혁명은 방법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인 빅데이터와 확장된 마음으로서의 사물 인터넷을 다룬다. 그것을 다음 칼럼에서 얘기하기 전, 4차산업혁명의 근본 철학을 체화하는 좀 더 일상적이고 돈이 들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거리를 걷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런 순간은 우리를 작은 개아의 틀에서 깨어나 세상의 문을 열고 나아가게 하며 인(仁)과 사랑을 성취하게 하며 값비싼 분석을  무효화시킨다. 당신이 다뤄야 할 사물 인터넷의 데이터는 싸구려 마인드의 것인가? 혹은 가치를 가진 명품 마인드의 것인가?


이 글은 과학기술정보협의회 (http://www.astinet.kr/)에  ’인지과학으로 만나는 IT-인문학 ’이란 전문위원 칼럼으로 개제 되었습니다.

Juno
Author

한국표준협회 경쟁력향상센터 수석전문위원 nahojun@sod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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